2015. 9. 16. 14:18

"슬로푸드는 비싸다? 좋은 재료인가 따질 뿐"


창시자 카를로 페트리니·요리사 박찬일 대담
"한국 국밥은 훌륭한 음식… 휴대폰엔 큰돈 쓰면서 좋은 야채에 인색해서야…"

1986년 3월 20일 이탈리아 로마의 스페인 광장에 새 음식점이 들어섰다. 여느 음식점 개점 때와는 달리 싸늘한 시선이 가게로 내리꽂혔다. 맥도널드의 9007번째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광장에 들어선 패스트푸드점 앞에 항의하는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쳤다. "패스트푸드는 싫다! 슬로푸드를 원한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카를로 페트리니(61)는 슬로푸드협회를 창설하고 대안 식문화 운동을 이끌어왔다. 지난 8일 방한한 그는 슬로푸드 대회(10~11일)를 둘러보고 대중강연을 했다.

지난 11일 경기도 남양주시 체육문화센터에서 카를로 페트리니 슬로푸드 회장(오른쪽)과 요리사 박찬일이 막걸리 잔을 들고있다. 페트리니 회장은“지역별로 고유한 맛을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난 11일, 대회 현장인 남양주 체육문화센터에는 수십개의 부스가 1만여명의 관람객을 맞았다. 페트리니 회장은 오후 1시30분부터 열린 '막걸리 맛보기 워크숍'에 잠시 참가해 막걸리를 시음했다.

슬로푸드 정신을 대변하는 그를 요리사 박찬일씨가 만나 대담을 나눴다. 박씨는 1997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 피에몬테 요리학교 'ICIF'에서 공부하고, 슬로푸드 로마 지부에서 와인 과정을 마쳤다.

박찬일 요리사=전통적인 이탈리아 문화를 상징하는 곳에 맥도널드가 들어서면서 슬로푸드 운동이 태동했다. 당시 어떤 생각으로 항의하게 됐나? 맥도널드는 여전히 운영 중인데, 혹시 최근에 지나가본 적이 있나?

페트리니 회장=맥도널드가 들어서게 되면 아름다운 광장을 망친다고 생각해 반대했다. 맥도널드는 광장만 파멸시킨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위장도 파멸시킨 것이다.

=슬로푸드가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페트리니=이탈리아는 음식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곳이다. 게다가 지역별로 문화가 매우 다양하다. 맥도널드라는 존재는 다양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음식문화를 식민지화한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인의 열정에 불을 지른 것 같다.

=얼마 전 이탈리아에 가보니 슬로푸드 운동에도 불구하고 인스턴트 음식이 많이 퍼져 있었다. 위기감을 느끼나?

페트리니=패스트푸드가 증가하긴 하지만 맥도날드의 계획은 이미 실패 단계라고 생각한다. 예전 같은 기세로 문을 열지 못한다. 요즘 맥도널드가 기를 펴는 곳은 상대적으로 자유가 억압된 러시아나 동유럽 등지다.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곳에서는 예전처럼 성행하지 못한다.

=일부에서는 슬로푸드를 '천천히 만들어서 천천히 먹는 음식'이라고 오해한다.

페트리니=재료가 무엇인가,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가를 따져야 한다. 좋은 재료를 쓰고 제대로 만들었다면 길거리에서 먹어도 슬로푸드일 수 있다.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무조건 싼 것만 사서는 안 된다. 유기농 제품을 사야 생산자가 늘고 값도 내려가는 선순환이 가능하다.

페트리니는 "휴대폰에는 적지 않은 돈을 쓰면서 좋은 야채를 위해 쓰는 돈을 아까워하는 것은 정말로 멍청한 짓"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2004년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유럽의 영웅' 중 한 명으로 꼽았다. 먹을거리에 대한 기존 생각을 돌아보게 했다는 이유였다. 

=한국은 슬로푸드 정서와 역사를 가진 나라다. 하지만 최근에는 간장·된장 등을 집에서 담가 먹는 관습이 무너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통적인 가정 식품을 어떻게 지켜나가고 있나?

페트리니=이탈리아에도 가정 음식이 산업화해가고 있긴 하다. 하지만 가정에서 직접 만드는 것도 늘어나고 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행위이고 감사하는 행위다.

=슬로푸드 운동은 친환경 음식을 먹자고 한다. 하지만 유기농 음식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다 보니 슬로푸드가 빈곤계층의 소외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페트리니=슬로푸드는 단순한 음식을 말할 뿐, 비싼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국밥을 먹었는데, 단순하고도 훌륭한 슬로푸드라고 본다.

페트리니 회장은 "돈이 없어서 슬로푸드를 먹을 수 없다면 정보를 교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맥도널드보다 싼 값에 맛있는 파스타를 먹을 장소가 어딘지 서로 알려주게 되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원문-> http://food.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5/2010091500200.html

Posted by 슬로푸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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