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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이야기/한국슬로푸드소식

[2015.04.21] 2015년 슬로푸드 회원의 날, 그 첫번째 이야기

< 2015년 첫 번째 만남 >

 

슬로푸드 회원의 날

- 할머니의 날(Grandmother’s Day) –

 


 

 지난 4 21일 화요일 늦은 저녁시간, 도농동에 위치한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사무실에서 작지만 따뜻한 ‘2015년 첫 번째 슬로푸드 회원의 날이 있었습니다. 이번 회원의 날은 2008년 토리노 국제대회에서 공식 발표된 이후, 슬로푸드 아일랜드를 비롯 다양한 나라에서 운영해 온 할머니의 날을 부제로 하여 진행되었습니다. 해외에서는 할머니의 날을 맞이하여 직접 음식을 배우거나, 바느질 등 기술을 배워보는 워크숍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서도 할머니의 날에 다양한 워크숍을 운영해보기를 희망하며, 올해는 먼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슬로푸드 운동과 철학에 공감하고, 애정을 가지신 분들이 삼삼오오 사무실로 모여주셨습니다. 정답게 인사도 나누시고, 가져온 음식을 테이블에 놓기도 하면서 조금씩 웃음소리와 이야기소리가 퍼졌습니다. 협회사무실 내 크지 않은 아담한 강의실 안 테이블 위로 조한순 할머님께서 가져오신 망초대무침’, 김보람 선생님이 직접 부친 미나리전’, 허기순 선생님의 연근조림’, 장현예 지부대표님의 겉절이와 도토리묵무침 등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음식들이 하나 둘 차려졌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이 지나고, 앞에 놓인 음식들을 조금씩 나누면서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는 좋은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그 중 몇 가지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금재용 선생님의 이야기

94세까지 함께 하셨던 외할머니께서는 오랫동안 시장에서 장사를 하셨습니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면 목욕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사주시던 자장면이 있습니다. 지금과는 다르게 감자도 고기도 큼지막하게 들어있던 그 옛날의 자장면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대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시장에 들리면 사먹던 구수하고, 노랗고, 조금 미끌거리는 올챙이 국수도 생각나네요. 더불어, 찹쌀떡을 좋아하시던 할머니를 위해 집에서 직접 찹쌀떡을 만드느라 아궁이 앞에 서서 땀 뻘뻘 흐리며 솥 안에 팥을 젓던 기도 납니다.

* 찹쌀떡에 대한 이야기는 사모님이신 국영주 선생님께서 할머니를 위해 직접 팥앙금을 만들고, 찹쌀떡을 만들던 모습이 뜻 깊고, 정말 좋아 보였다며 이야기를 꺼내주셔서 나누게 되었습니다.

 

김종애 지부대표님의 이야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긴 머리를 정갈하게 쪽을 지시고, 단정한 몸가짐으로 음식을 하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정갈하게 준비된 자세로 음식을 준비하시는 그 모습과 자세 역시 우리가 기억하고, 배워야 할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렇게 단정하신 모습으로 해주시던 음식 중 봄과 가을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습니다. 봄에는 꽃이 벌어지기 전에 따서 만들어주시던 아카시아꽃부각이 생각납니다. 아주 살짝 기름에 튀겨서 만들어주시면 꽃 안에 차있는 꿀에 달큰함이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을이면 떡을 꿀이나 조청에 찍어먹고는 하였는데, 이 조청에 들어가던 재료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아서 아쉽네요. 조청에 물곳(‘무릇의 방언) 등의 봄에 나는 약초와 고염(감의 원조) 등을 섞으신 후 고아주셨는데, 거기에 떡을 찍어 먹으면 무척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허기순 선생님의 이야기

슬로푸드와는 아동요리지도사과정을 들으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같은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올해 90살이 되신 어머니의 음식이 가끔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옛날에는 미원도 있는 집에서 넣던 거였고, 어머니의 솜씨들이 그대로 음식에 묻어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김치와 묵을 정말 잘 쑤셨는데, 도토리도 도토리 종류에 따라 묵 맛이 다른데, 가장 맛있는 도토리인 재롱도토리(아주 작은 상수리 도토리)로 만들어주시는 묵이 제일 맛있었어요. 지금도 김치랑 묵은 손맛이 안 변하셔서 그 옛날처럼 어찌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없어지시면 못 먹게 되는 음식이 생긴다는 걸 깨닫고 몇 년 전부터 음식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똑 같은 양념으로 해도 어찌 이리 맛이 다른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맛있다는데, 저는 어머니의 맛을 기억해서인지 제 입맛에는 안 맞더라고요.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배울 곳이 없다는 사실에 열심히 배우는데, 하나하나가 어찌나 정성인 지 모르겠어요. 근래에 밭을 돌볼 때면 어머니께서 하시던 이야기가 문득 생각납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곡식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단다.’

 

장현예 지부대표님의 이야기

저도 작년 85세로 별세하신 할머니 같은 친정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묵을 잘 쑤셨는데, 도토리를 일일이 까서 울금을 내어 만드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힘들게 만드시는걸 알아서 남편이 우리가 맛있게 먹으면 자꾸 하시니까 너무 많이 먹지 말라던 이야기도 생각이 나네요. 그렇게 힘든 묵 쑤는 일을 어머니께서 담담히 하시면서 제게 어떻게 묵을 쒀야 맛있는지 하나하나 말씀해주시고는 했습니다. 오늘 가져온 묵은 그렇게 배웠던 기억을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하며 정말 정성을 담아 젓고 저어가며 만들었습니다. 오늘 묵과 더불어서 머위를 이용한 강된장을 만들면서 어머니와 만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21살의 큰 애를 둔 엄마가 되면서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 맺음을 하는 것이 좋을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음식을 통해서 관계 맺음을 하셨던 친정어머니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식을 통한 나눔을 보여주시고, 관계 맺음의 원형을 보여주신 어머니를 본받아 저도 멋진 어머니, 할머니가 되고 싶습니다.

 

국영주 선생님의 이야기

저는 결혼 4년 차로 영양사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8남매 중에 맏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외할아버지께 지극정성이던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시고는 오히려 저에게는 요리를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제게 요리를 가르치시지 않으셨지만, 어머니의 요리솜씨는 정말 좋으셨습니다. 강된장과 비슷한 느낌의 뽀배장을 맛있게 해주시곤 했었는데, 옛날에는 왜 그렇게 그런 음식들이 촌스럽게 느껴졌었는지 모르겠어요. 당시 제게 어머니의 음식은 요새 아이들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고 느껴서 그랬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고 귀한 것인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저는 이야기가 있는 음식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학교의 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 하는 이야기 있는 음식 만들기와 같이 제가 엄마와 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지금의 아이들이 느끼지 않도록 활동들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어머니께서 하실 수 있는 일과 음식들이 줄어드시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아쉬움이 너무 크죠. 이런 아쉬움을 제 아이들과 요즘의 아이들이 느끼지 않도록 좋은 기억들을 주는 역할을 계속 해나가고 싶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진 것은 그리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할머니의 나의 어머니의 손 끝에서 만들어지던 그 음식의 귀중함을 알았다면 그 분들이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을 알려주실 수 있을 때 배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금이라도 조금씩 그 기술과 경험을 이어가려는 노력, 아이들에게는 같은 아쉬움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들을 보면서 희망 또한 발견할 수 있었기에 소박한 모임이었지만 참 따뜻하고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음식은 소통과 관계를 이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음식을 맛본 손자, 손녀들은 어느 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할머니께서 만들어주셨던 어떤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조를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머니는 고민하고, 시도해보다 할머니께 조리법을 여쭙기 위해 전화를 드리겠지요. 그렇게 할머니에게서 어머니로 다시 손녀, 손자와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로 그렇게 끊임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할머니의 음식이 가지는 힘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늦은 시간 함께해주시고, 좋은 이야기를 나눠주신 슬로푸드 회원의 날의 모든 참여자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인사 드립니다. 함께 해주셔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