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20 20:25

‘음식’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

 

엄창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4)

 

슬로푸드문화원. 이번 탐방의 마지막 일정으로, 여기 도착한 것은 조금 늦은 저녁이었다. 문화원이 산 속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빨리 해가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빠른 일정 진행을 위해서 우리는 문화원을 조금 둘러본 후에 바로 강의를 듣고 이곳에서의 일정인 슬로푸드 만들기를 시작했다.

 

강의는 먼저 최민구 요리사님의 이야기로 시작했다. 진정한 슬로푸드를 추구하는 Chez Panisse의 이야기는 조금 신기했다. 재료에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점, 요리사도 손님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는 점, 강의 내내 느껴지는 그곳의 분위기 등에서 나는 Chez Panisse를 비현실적이라 느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마도 내가 한국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음식점이 가진 이미지는 Chez Panisse와 매우 다르다. 단순히 세련됨, 깔끔함 등에서의 차이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한국의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을 때 보통 어떤 생각을 하는가. 나의 경우, 그다지 신뢰하고 먹지는 않는다. ‘화학조미료를 넣었겠지’, ‘싼 재료 썼겠지’와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먹는 음식이지만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몇몇 특별한 음식점은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나는 한국의 음식점에 대해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러한 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내 몸으로 바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해서 어떻게 그런 식으로 대처할 수 있느냐고 비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한국의 음식점이 보여주는 현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체념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다. 물론 조금 찝찝해하면서 말이다.

 

반면, Chez panisse는 달랐다. 그들의 음식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을 음식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을 따로 생각하는 이러한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라 자연 속의 인간을 생각하며, 인간만을 보는 것이 아닌 자연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하는 철학을 음식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도 이러한 음식점이 많아져서 직접 만들어 먹지 않더라도 안심하고 즐겁게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다음 강의는 이 날의 체험에서 만들 음식을 위한 강의였다. 오이와 참외를 재료로 한 소박이와 감자를 이용한 음식이었다. 후자의 경우 이름이 잘 기억이 나진 않으나 감자떡과 비슷한 맛이었다. 강의를 간단히 듣고 바로 음식 만들기에 들어갔다. 슬로푸드 만들기라는 이름 그대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손이 많이 갔다. 감자를 강판에 갈고, 물기를 짜내고, 전분을 걸러서 다시 감자에 섞는 과정이나 오이와 참외를 먹기 좋게 써는 과정 등은 평소에 내가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간편하게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마트에서 가공식품을 사다 먹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 느낌은 바로 내가 음식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혼자 자취 생활을 하다보면,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귀찮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래서 주로 음식점에서 먹거나, 분식집이나 마트에서 김밥을 주로 사먹곤 했다. 그래도 나름 양심이 있어서 빵이나 과자는 잘 먹지 않았다. 하지만 슬로푸드를 만들면서 원래 음식이란 이렇게나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음식에는 노력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우리 조상들은 음식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특히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많은 양의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서 저장할 수 없었고, 그래서 자주 음식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재료와 조미료를 손쉽게 구할 수 없던 시절에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은 장류다. 한국의 음식에서 장은 모든 음식의 바탕이며, 따라서 장은 한 가족의 중대사로 여겨질 만큼 중요한 식재료였다.

 

이는 우리 신화에서 ‘철융신’이라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철융신은 장독대를 지키는 신으로, 이러한 신에 대한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장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음식에는 원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이러한 자연스러움을 점점 지워가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적 문화의 확산, 저장 기술의 발달, 화학 기술 발달로 인한 조미료의 대량 생산 등의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과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음식을 먹고자하는 욕망은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근본이라 볼 수 있다. 이 근본적 욕망이 자본주의라는 도구를 만나면서 현대 사회의 음식 문화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 문화의 핵심적 아이콘으로 패스트푸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이날 슬로푸드문화원에서 경험한 슬로푸드 만들기는 그동안 잊고 있던 자연스러움을 다시 기억나게 한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슬로푸드문화원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경험이었다. 짧은 강의와 슬로푸드 만들기, 그리고 식사. 이것이 이날 그곳에서 했던 행동의 전부다. 하지만 단순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내게 몇 가지 고민을 던져주었다. ‘음식이란 어떠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대략적인 답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답은 아직 모른다. 아마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번 슬로푸드문화원의 경험은 내게 매우 흥미로운 경험이었으며, 고민을 시작하게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Posted by 슬로푸드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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