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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아카데미/슬로푸드매니저과정

'좋은 음식'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 경남 창녕에서 진행된 5주간의 슬로푸드 교육


'좋은 음식'을 아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경남 창녕에서 진행된 5주간의 슬로푸드 교육
12.03.01 11:46 ㅣ최종 업데이트 12.03.01 11:46 임은경 (atree12fly)

"지구 환경과 내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 주변 사람들과 나는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 농업을 살리고 음식을 살리는 것이 곧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번 강의 중에 지금 우리 세상은 미래 세대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니 깨끗하게 쓰고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제 제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할 차례인 것 같습니다."

지난 2월 26일 일요일,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사무소에서 제8기 슬로푸드 매니저과정 수료식이 열렸다. 1월 28일 토요일부터 매 주말을 이용해 1박 2일씩 5주간 열린 슬로푸드 교육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슬로푸드 매니저과정'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사)슬로푸드문화원에서 매해 개최하는 슬로푸드 교육으로, 남양주가 아닌 지역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남 창녕에서 5주간 진행된 '슬로푸드 매니저 과정 8기' 교육 모습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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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의 교육생들은 5주간 교육장으로 사용된 '나뭇골 자연체험학습장'(창녕군 영산면 구계리 362번지)에서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과 대응방법(김종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을 배우고, '육식의 불편한 진실(소혜순 팔당생협 식생활연구소장)'이나 '한국인의 밥상에 담긴 한국인의 욕망(황교익 맛칼럼니스트)'에 대해 들으면서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음식'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육 중간 틈틈이 '전통사찰음식', '약선음식', '전통장 활용 요리' 등 슬로푸드 조리 실습이 곁들여졌고, 4주차인 2월 18일~19일은 충북 괴산 흙살림토종연구소, 유기농 잡곡을 생산하는 괴산잡곡, 음식연구가 문성희 씨가 운영하는 '평화가 깃든 밥상' 등을 견학하고 강연을 들었다.

"장 담그기는 불고기 재우기보다 쉽다"

마지막 주 첫 강의는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의 '한국의 장(醬)' 강연과 장 만들기 시연이었다. 우리 민족의 역사만큼이나 장구한 역사를 가진 장류는 40여 종의 문헌에 250여 종이 언급되어 있다. 고 소장은 '장은 모든 맛의 으뜸이니 가장은 모름지기 장 담그기에 뜻을 두어 오래 묵혀 좋은 장을 얻어야 한다(유중림, 증보산림경제)'는 고문의 내용을 인용하며 "장을 담그는 것은 한 가정의 연중행사를 넘어 우리 민족의 혼과 얼을 담는 의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진 '초간단 슬로장(slow 醬)' 만들기 시연에서는 물에 엿기름 대신 조청을 풀고 고춧가루와 메주가루를 넣은 즉석 고추장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고 소장은 "장 담그기는 김치 담그기나 불고기 재우기보다 쉽다"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장을 매번 사다먹는 노력이면 집에서도 장을 담가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급증을 버리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장을 담가 먹는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생기는 문제들, 사회적인 여러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25일 저녁 '나뭇골 자연체험학습장' 교육장에서 진행된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강연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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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강의가 이어졌다. 그는 '밥 한 그릇에 천지인이 다 들어있다(一碗之食 含天地人)'는 해월 최시형의 말을 인용하며 "이것은 어렵고 심오한 말이 아니라 모두가 농사를 짓던 옛날에는 다들 자연스레 이해하던 것"이라고 말하고, "하지만 자본이 '음식 비슷한 것'을 제조하여 파는 요즘, 이러한 음식 전통은 모두 사라졌다"고 통탄했다.

황 칼럼니스트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상품 판매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슬로푸드'라는 이름을 함부로 갖다 쓰는 현실을 비판하기도 했다.

"일부 죽 회사가 '슬로푸드'라고 광고하는 것, 또는 '한식은 모두 슬로푸드'라는 근거 없는 논리는 모두 자본이 이윤 창출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 낸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오직 이윤을 위해 값싼 저질 식품을 만들어 파는 자본의 욕망을 꿰뚫어볼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음식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이는 곧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과 연결됩니다."

바른 음식 먹기는 '내 삶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

1박 2일 일정의 교육이기 때문에 토요일 밤은 현지 숙소에서 자고, 일요일 아침부터 다시 강의가 이어졌다. 스스로를 농부 시인이라 소개하는, 귀농해서 8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서종홍 시인이 마지막 강의를 맡았다.

"신부님 수녀님만 성직이 아니죠. 가장 훌륭한 성직(聖職)을 농부라고 했어요. 농부는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대학교수 없어도, 농협 없어도, 군인 없어도, 판검사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농부가 없으면 살 수 없어요."

서 시인은 돈을 벌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며 노력을 해도 불행하기만 한 도시의 삶이 싫어서 농촌에 왔다며,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살아있다는 이 멋진 사실에 가슴이 두근대고, 어제 심은 배추며 무, 고추가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 밭에 나갈 때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설렌다"고 말했다.

다양한 이력을 가진 8기 슬로푸드 매니저과정 수강생들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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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아주 적은 돈으로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의사 천 명이 나온 것이 그 학교를 빛낼까요, 농약 안 치는 농부 한 명이 나온 것이 그 학교를 빛내는 일일까요? 저는 아이들과 대학은 가지 말자고 약속했습니다. 대학을 나오면 여름에 에어컨 틀고 겨울에 히터 트는 데서 일해야 합니다. 지구에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제 아이들이 농부가 되겠다고 돌아오면 동네에 현수막을 붙이고 잔치를 하려고 합니다. 그때 와 주시겠습니까?"

뜨거운 박수와 함께 강연이 마무리되고, 오후 4시에 드디어 마지막 순서인 수료식이 진행되었다. 5주간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며 정이 들대로 든 수료생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하다. 김종덕 슬로푸드아카데미 교장(경남대 교수)이 한 사람 한 사람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수료증을 전달했다.

'슬로푸드는 철학'... "잊지 못할 수업이었다."

농부, 요리사, 떡공방 주인, 주부, 영농조합법인 대표, 회사원, 공무원, 사회복지사까지 수료생들의 인적 구성과 직업은 다양하다. 창녕이나 인근의 대구, 양산, 김해, 부산 등에서 온 경우가 많지만 멀리 전남 곡성이나 천안에서 매주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 사람도 있다.

창녕에서 농업과 전통주 사업을 하는 최영봉 씨(48)는 "농업을 살리고 음식을 살리는 것이 곧 나와 우리 모두를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면서 "지금까지 이 세상은 선조에게 물려받은 것인 줄 알았는데, 이번 강의 중에 지금 우리 세상은 미래 세대에게 잠시 빌려온 것이니 깨끗하게 쓰고 돌려줘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제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26일 창녕군 영산면 사무소에서 열린 제8기 슬로푸드 매니저 과정 수료식. 왼쪽이 김종덕 슬로푸드아카데미 교장.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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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에서 온 공무원 한현주씨(33)는 "'슬로푸드는 철학'이라는 김종덕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며 "보통 세상에서 음식을 얘기할 때는 영양소나 효능 등 물질적인 것만을 놓고 말하는데, 황교익 칼럼니스트 등 여러분의 강의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음식의 숨겨진 이면에 대해 잘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음식이 대단히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 우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배웠다. 잊지 못할 수업이었다"고 말했다.

'슬로푸드 매니저 교육'은 농림부와 농업인재개발원의 지원을 받기는 하지만 자부담으로 40만원을 내야 한다. 농업 관련한 '교육'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돈벌이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아닌 교육에 40만원씩을 내고 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농업 교육 인플레... 돈 안되는 교육은 외면

"사실 매 교육 때마다 사람 모으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나라 농업 교육은 대부분 기술이나 경영 등 돈벌이와 관련된 것만 교육하지요. 농촌이 돈을 많이 벌어야 되는 곳인 것처럼 바라봐요. 그러다보니 돈이 안 되는 교육은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에요."

김원일 슬로푸드문화원 사무총장은 사람들에게 슬로푸드 매니저 교육을 권하면 제일 먼저 묻는 말이 "그거 하면 무슨 자격증을 주느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수강료 40만원을 들이면 얻는 것이 뭐냐, 다시 말해 돈을 벌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지금 농업 교육들이 사람들을 그렇게 몰고 가요. 교육 인플레라 할 정도로 농업 교육은 넘쳐나는데 지향하는 것은 모두 하나에요. 돈에 관심 없는 서종홍 시인 같은 소위 '무능력한' 사람은 퇴출시키는 교육밖에는 안 되는 것이지요. 농촌에서 돈을 못 버는 사람은 농촌이 절망이라고 말을 하고 다닙니다. 하지만 우리 농촌이 절망인가요? 돈이 안 되니까, 그래서 절망이니까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도시 사람들은 뭘 먹고 사나요?"

교육 과정 중 전통주인 '향온주' 빚기 실습 모습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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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교육은 돈벌이를 가르쳐주는 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막상 와서 듣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농업과 음식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자연과 내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돈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등 삶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김종덕 슬로푸드아카데미 교장은 음식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음식 같지 않은 음식을 먹는 현대인들을 '음식 문맹'이라고 정의하고, "음식 문맹인 현대인들이 음식에 애정을 갖고 좋은 음식을 만드는데 능동적인 역할을 하도록 사람들의 식생활을 컨설팅해줄 수 있는 전문가를 키우는 것"이 슬로푸드 매니저 과정을 열게 된 동기라고 설명했다.

"음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김 교장은 얼마 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시중에 유통되었던 '500원짜리 햄버거'의 예를 들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은 자기 자식이나 손자에게 과연 그 햄버거를 먹였겠느냐"고 되물었다.

"음식을 바꾸면 세상이 바뀝니다. 옳지 않은 음식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저항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음식 문맹'이 아니라 음식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깨어있는 '음식 시민'들이 많아져야 세상도 바뀌는 것이지요."

교육 중 즐거운 점심식사 모습. 각자 집에서 한 가지씩 가져온 반찬과 전통주 등으로 차린 슬로푸드 밥상.
ⓒ 슬로푸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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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장과 같은 오랜 세월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가 담긴 음식, 공장식 패스트푸드가 아니라 자연의 속도에 맞게 생산된 바른 음식. 그러나 슬로푸드가 지향하는 것은 단지 음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는 바른 음식은 자연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결국 자연과 인간은 하나임을 이해하는 것, 인간을 소외시키는 자본의 음식에 저항하고 나눔과 공생의 삶을 실천하자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나 혼자 먹으면 슬로푸드고 여럿이 같이 먹으려 하면 슬로푸드 운동입니다. 슬로푸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3월 7일부터는 호남에서 4주짜리 매니저 과정 교육이 있고, 4월 5일부터 4주간은 매주 목요일에 부산에서 교육이 있습니다. 5월에는 과천, 6월에는 서울 교육이 있고요. 슬로푸드 매니저 과정 수강생이 많이 늘어나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슬로푸드를 나누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임은경 기자는 (사)슬로푸드문화원 국제협력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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